낙태를 위해 멕시코로 향하는 미국 여성들

  • 레이레 벤타스
  • BBC News, 로스앤젤레스
Pregnant belly with the words 'bans off our bel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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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After the US Supreme Court overruled the right to an abortion in June, women have started to go elsewhere for abortion access

미국 남부 텍사스주에서 4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애나(23)는 또 다른 아이를 낳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텍사스주는 미국에서도 가장 엄격한 임신중지(낙태) 금지법을 시행하기에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애나는 SNS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떤 번호를 알게 됐고 왓츠앱으로 "낙태를 해야 해요"라는 절박한 메시지를 보냈다.

국경 너머 멕시코 북부 도시 누에보레온주 몬테레이의 산드라 카르도나(54)가 이 메시지를 받았다.

멕시코에서 임신중지가 엄격히 금지됐던 6년 전, 카르도나는 멕시코 여성들이 낙태약을 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레드 네세시토 어보타(임신중지 도움이 필요합니다)'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이 온라인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단체명을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카르도나가 설립한 이 단체는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임신중지를 유도하는 약물인 미소프로스톨을 보내주며, 누에보레온주에 있는 본사 건물에선 시술을 겪는 여성들에게 지낼 곳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카르도나에 따르면 약을 받기 위해 직접 찾아온 여성들에겐 "(임시중지 과정을) 설명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함께 해주길' 원하는 여성들"에겐 세계보건기구(WHO)가 안내한 의료진의 도움이 없을 때 미소프로스톨을 복용하는 방법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다고 했다.

한편 과거엔 주로 몬테레이에 사는 여성이나 이곳을 찾아 북향한 이주 여성들을 도왔으나, 지난 1년간 도움을 원하는 미국인의 수가 꾸준히 증가했다고 한다.

카르도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1년 전쯤 처음으로 (미국인) 여성을 지원했다"면서 "영어를 할 줄 모르지만 구글 검색을 통해 소통했다"고 전했다.

애나는 10월 어느 오후 몬테레이에 도착해 그날 밤 임신중지 시술을 하고 다음 날 아침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카르도나는 "텍사스에서 찾아오는 수가 크게 늘었다"면서 애나뿐만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경을 접한 멕시코와 미 텍사스주가 낙태에 대해 서로 다른 정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 중지를 위해 멕시코로 향하는 미국 여성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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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임신 중지를 위해 멕시코로 향하는 미국 여성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 9월 멕시코에선 역사적인 판결이 내려졌다. 멕시코 대법원이 코아우일라주가 낙태를 범죄 행위로 규정해 처벌하는 건 위헌이라고 만장일치로 판결한 것이다. 이에 따라 멕시코 전역에선 사실상 낙태죄가 폐지됐다.

같은 달 텍사스주에선 당시 미국 내에서도 가장 엄격한 낙태 금지 법안이 시행됐다. 'SB 8'이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법은 임신 6주 이후 중절을 금지하는데, 이 시점에선 임신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여성도 많다.

또한 텍사스주에 있든 없든 간에 누구나 임신 6주 이후의 중절을 돕는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더해 미국에선 약 50년간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보장했던 '로 대 웨이드' 판례가 올해 6월 대법원에서 뒤집히면서 임신중지 접근권이 더욱 제한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5일 텍사스에선 '로 대 웨이드' 판례 번복에 따라 더욱 엄격한 임신중지 제한법이 발효하기도 했다.

그러나 판례 번복 이전에도 텍사스에선 등록된 낙태 건수가 감소 중이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올해 2월까지 6개월간의 임신중지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정도 수준이었다.

이에 대해 텍사스 내 최대 임신중지 도움 시설 중 하나인 '홀 우먼스 헬스'에서 활동하는 재키 딜워스는 "대법원의 판례 번복 이후 미국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고 싶다면, (텍사스가) 좋은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텍사스에서 등록된 임신중지 건수가 적다고 해서 반드시 임신중지 시술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임신중지를 원하는 많은 여성이 임신중지법이 비교적 엄격하지 않은 다른 주나 국경 너머 멕시코로 향하기 때문이다.

'심장박동법'이라고도 불리는 텍사스주의 'SB 8' 법안은 임신 6주 이후 임신중지 시술을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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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심장박동법'이라고도 불리는 텍사스주의 'SB 8' 법안은 임신 6주 이후 임신중지 시술을 금지한다

카르도나는 미국 여성들이 메시지를 정말 많이 받고 있다면서 2층 서재를 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개조하고 있다고 했다.

"침실을 빌려주기도 했다"는 카르도나는 "더 많은 공간을 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어보테리아(임신중지의 집)'로 불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활동 확장을 계획 중인 단체는 '레드 네세시토 어보타'뿐이 아니다. 멕시코의 또 다른 임신중지 지원 단체인 '마레아 베르데 치와와'에 속한 마리엘라 카스트로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따라 여러 단체와 인권 운동가들이 임신중지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스트로는 많은 미국 여성들이 임신 중지를 위해 멕시코로 오는 이유에 대해 이들이 사는 주의 생식 건강권과 관련한 보건 서비스나 공공 자금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멕시코에 와 약국에서 직접 약을 사는 이들도 있고, 함께 약국으로 가줄 사람과 접촉하는 이들도 있다.

한편 이러한 임신중지 지원 단체의 활동은 회색 지대로 볼 수 있다.

미국에선 관련 절차가 법으로 허용된 관할 지역에서 의료진으로부터 낙태약을 직접 처방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병용을 통한 의학적인 낙태 유도를 승인하고 있다.

먼저 미페프리스톤을 복용하면 임신을 도와주는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의 작용이 억제돼 자궁 내벽이 얇아지고 배아의 착상을 방해한다.

미페프리스톤 복용 1~2일 후에 복용하도록 권장되는 두 번째 약물인 미소프로스톨은 원래 1970년대 위궤양 치료제로 개발됐다. 그러다 임신중지를 유도한다는 특징이 발견되면서 WHO도 관련한 복용 지침을 마련했다.

미소프로스톨은 복용 몇 시간 이내 자궁을 수축시키며 배아 배출을 돕는다. 이 과정에서 통증과 출혈이 동반될 수 있으며, 매우 드물지만 패혈증이나 자궁 손상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두 약물의 병용 요법은 현재 미국에서 임신 10주 이내 사용이 승인됐으며, 가장 일반적인 임신중지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레드 네세시토 어보타'와 같은 멕시코의 단체들은 미페프리스톤은 쉽게 구할 수 없어 주로 미소프로스톨만 보낸다.

WHO는 미페프리스톤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미소프로스톨만 이용한 중절도 가능하다고 안내하지만, 미 식품의약청(FDA)은 이를 승인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주립대의 그레이스 하워드 법학과 조교수는 약물 낙태가 제한되거나 금지된 장소에 낙태약을 보내는 행위는 "범죄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올해 들어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히기 이전에도 이미 미 22개 주에선 약물 낙태 전면 금지 조치를 포함한 제한 조치 117개가 발의된 바 있다.

최근엔 최소 10개 주에서 약물 낙태 등을 포함한 임신중지가 금지됐으며, 앞으로 12여 개 주가 같은 행보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하워드 교수는 "일반적으로 볼 때 이러한 (금지)법은 낙태약이 배송되는 장소 및 복용하는 장소에 적용될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미 당국이 임신중지 시술 여성들을) 멕시코에서 인도해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책임의 한계 또한 불분명하다. 카스트로는 '마레아 베르데 치와와'의 역할은 "서비스를 요청한 사람이 완전히 만족하는" 데서 끝난다면서 응급처치와 정서적 지원에 대해 자원봉사자들을 훈련하고, 합병증 발생 시 의사와 상담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낙태를 반대하는 진영에선 이렇듯 회색지대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이 건강 검진 등의 의료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기에 여성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이 제공하는 약물이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가장 큰 임신중지 반대 단체 중 하나인 '스투던트 포 라이프'의 크리스티 햄릭 대변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건강과 안전에 관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에게 상해, 불임, 심지어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는 약물을 우편으로 발송하는 건 무모하고도 치명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투던트 포 라이프'는 낙태약의 해외 유입을 막을 방법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의료 전문가들은 낙태약을 구하기 위해 해외 단체에 도움을 청하는 여성들은 상황이 정말 절박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낙태약이 의학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하지만 집에서 낙태약을 복용하는 이들도 어느 시점에서든 필요하다면 공식적인 의료 체계에서 안전하며 가치 중립적인 지원과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미 산부인과 전문의 협회' 회원이자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산부인과 전문의로 활동하는 니샤 베르미의 설명이다.

한편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출신 예술가 제인*(22)은 멕시코에서 낙태약을 받아 임신을 중단했다. 이번이 2번째 임신중지라고 한다.

낙태 시술을 도움받는 과정에서 "담당 직원"이 할당됐다고 했다.

제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담당 직원이 페이스타임, 스카이프, 줌과 같은 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 연락해왔고 대화를 나눴다"면서 "내게 주어진 선택지를 모두 고려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내가 혼자 임신중지하는 방법을 택하자 1시간 동안 생리대 대형 2개가 넘칠 정도로 출혈한다면 위험하다는 신호이니 병원에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내 담당 직원의 번호를 알고 있어서 (낙태 당일) 내내 문자를 보냈다. 해야 할 일을 해줬고 내가 안전하며 모든 도움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줬다"고 언급했다.

제인은 임신중지약을 통해 혼자 임신중지하는 방법은 "매우 고통스럽다. 메스껍고 설사, 구토 등을 경험한다"면서 "몸이 견디기 매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비용 때문에 멕시코 단체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같은 미소프로스톨일지라도 미국에선 훨씬 더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제인은 자신이 이용한 단체와 연결해주는 식으로 임신 중지를 원하는 다른 여성들을 돕기도 했다고 한다.

"말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텍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겁을 먹고 침묵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게 제인의 생각이다.

한편 멕시코의 임신중지권 옹호 운동가들은 약물 임신중지를 미국 여성들을 돕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멕시코에서 약물 임신중지권 옹호 운동을 이끄는 '라스 리브레스'의 베로니카 크루즈는 멕시코 단체들이 미국 여성들에게 임신중지약을 전달하기 위해 미국의 관련 단체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루즈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우린 임신중지 이슈에선 미국이 모범 국가라고 생각했다"면서 "이제 세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사에 등장하는 일부 인터뷰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