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권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히면 일어날 일

임신중지 참성론과 반대론 시위대가 지난 1월 미국 워싱턴 D.C. 연방대법원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사진 설명, 임신중지 참성론과 반대론 시위대가 지난 1월 미국 워싱턴 D.C. 연방대법원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BBC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는 의견을 다수 의견으로 채택한 초안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2일(현지시간) 공개한 미 연방대법원의 다수 의견서 초안에 따르면 미국의 50개 주 중 절반 정도에서 여성들의 낙태권이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유출된 해당 문건에서 사무엘 엘리토 연방대법관은 "1973년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어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1973년 연방대법원이 임신 약 24주 뒤에는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보고 그전에는 낙태를 허용한 것이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낙태권을 헌법으로 보호한 이 판례가 번복될 수도 있다는 소식에 여성의 권리와 선택을 외치는 인권 운동가들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편 낙태 반대론자들은 환호를 보내고 있다.

해당 문건은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미시시피주 법안에 대한 심리를 위해 작성한 1차 초안으로, 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6월 말이나 7월 초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힌다면?

그렇다고 해서 당장 미 전역에서 낙태가 불법으로 규정되진 않을 것이다.

대신 여성들의 낙태 접근권의 정도는 각 주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50개 주 중 약 절반이 몇 주 안에, 많은 주가 즉시 낙태를 금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외 주에서는 해당 주에 사는 여성뿐만 아니라 낙태가 금지된 주에 거주하는 여성들에게도 낙태 접근권을 계속 보장할 것이다.

낙태를 금지할 주는?

이른바 "방아쇠 법"이 준비된 주는 13개로,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을 경우 이들 주에서는 즉각적으로 낙태가 금지된다.

아칸소, 아이다호, 켄터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미주리,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테네시, 유타, 텍사스, 오클라호마, 와이오밍 등이 해당한다.

여성의 선택권을 외치는 인권단체 '굿마커 재단'은 이외에도 약 12개 주에서 신속히 혹은 심각한 수준으로 여성의 낙태 접근권을 제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임신 가능 연령의 여성 3600만 명이 낙태를 금지한 주에 살게 되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재단은 저소득층 여성과 소수 인종계 여성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했다.

낙태권을 불법화하려는 주는 대부분 미 남서부 지역의 주들이다. 이들 주에서 낙태가 불법으로 규정되면, 일부 여성들은 임신 중단을 위해 낙태가 허용된 다른 주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수도 있다.

동영상 설명,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의 이야기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향한 미국 여론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62%는 "모든 혹은 대부분의 낙태가 허용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모든 혹은 대부분의 낙태를 불법화해야 한다"는 응답은 38%에 불과했다.

2021년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어야 한다고 생각하나"를 물은 CBS 뉴스의 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응답자의 62%가 "아니"라고 응답했으며, 38%만이 "그렇다. 뒤집어야 한다"고 답했다.

왜 지금 논란이 되는 것일까

대법원은 낙태 가능 기준을 임신 15주로 좁히며 '로 대 웨이드' 판결에 이의를 제기한 미시시피주 법률의 위헌 여부를 작년부터 심리하고 있다.

영상캡션: 미시시피주의 법률이 어떻게 낙태권 폐지로 이어질 수 있나

미국의 연방대법관은 총 9명으로 종신 재임이 가능하다.

그러다 공석이 나오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재임 중 임명한 대법관이 3명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례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며 낙태 접근권을 제한하려는 보수 정치권 쪽으로 기운 모습이다.

실제로 트럼프가 임명한 대법관 3명 모두 '판례 번복'에 투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공화당이 득세한 많은 주에서는 최근 몇 년간 낙태 접근권을 더욱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기 위해 열을 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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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권에 관해 증가하는 '적대성' (각 주의 '적대성'은 여성이 낙태를 위해 얼마나 병원을 자주 방문해야 하는지 등의 여러 기준을 바탕으로 측정했다)
사진 설명, 낙태권에 관해 증가하는 '적대성' (각 주의 '적대성'은 여성이 낙태를 위해 얼마나 병원을 자주 방문해야 하는지 등의 여러 기준을 바탕으로 측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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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초안은 누가 유출했나

대법원의 결정이 이렇게 미리 대중에게 공개되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다.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는 1973년 판결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긴 했다.

대법원은 3일 "지난 2월 대법관들 사이에 회람된 의견 초안이 맞다"면서도 "최종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초기 버전"이라고 밝혔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초안 유출을 '법원 기밀에 대한 배신'이라며 "경위 조사를 시작하도록 지시했다"고 했다.

대법원의 결정문은 공개되기 전까지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편 의견서 초안의 내용은 최종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